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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하는 쉽게 밀리지 않는다

1000킬로그램의 존재감을 지탱하는 구두를 신는다.

신세하

신세하는 본명이 아니다. 고등학생 때 프로듀싱한 래퍼 김아일의 앨범 <Boylife In 12"> 발매 직전, 새벽에 작업하다 지었다. 특별한 의미를 두고 만든 이름은 아니지만 2014년에 프로듀싱한 앨범 발매 이후 꾸준히 본인 노래를 세상에 내놓으며 이름에 그만의 색깔을 입혔다. 신세하 이전의 본명을 알았던 사람들도 이젠 그를 ‘세하'라 부른다. “본명으로 불러줄 법도 한데 말이죠. 그래서 좋아요. 뮤지션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고 얘기해주는 것 같아서요.” 누가 지어준 이름도, 큰 의미가 담긴 이름도 아니기에 오히려 신세하라는 이름은 가능성이다. “‘Xin Seha’라는 영문 철자를 보면 중국 이름 같기도 한데, 무국적자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느낌?”​

에어비앤비

새 앨범 <1000>은 기존 작업실을 두고 한 달여간 에어비앤비를 빌려 그곳에서 먹고 자며 작업했다. 층마다 공연장, 무용실, 연습실 등이 있는 예술가를 위한 건물에 위치했다. “아침엔 장구나 꽹과리 소리에 눈 뜨기도 했어요.” 천장이 유난히 높았던 꼭대기 층에서 작업한 그는 큰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기지개를 켜며 하루를 시작했다. 공간이 열려있으니 많은 뮤지션이 찾아왔다. “전엔 혼자 끙끙 앓으면서 작업했는데 함께하니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좋은 영향을 받았어요.” 한 달 후 돌아간 기존 작업실은 공허했고 지저분했다. 대청소를 마친 공간에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예정이다. (CREDIT 사진/ 뇌 @n_ouir)​

1000

앨범명이기도 한 타이틀 곡 ‘1000’은 앨범 전반의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다. 1000은 그가 지닌 생각의 무게를 뜻한다. “사람이 1000킬로그램일 순 없잖아요. 대신 생각의 무게라고 생각하니까 가능할 것 같더라고요.” 그보다 더 큰 숫자가 아닌 이유는 현실성이 없어서다. 언뜻 보면 본인에게 무의미해 보이는 숫자를 붙인 건 그동안 그의 음악에 훵크, 올드스쿨 힙합, 신스팝 등 이질적인 키워드가 따라온 것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다. “저도 제가 무슨 음악을 하는지 설명하지 못하겠더라고요.” 또 다른 수록곡 ‘Crystal’은 다각도에서 빛이 통과하며 약간의 변화에도 다른 색채를 뿜는 수정의 모습에 본인을 빗대었다. 그의 음악은 1000킬로그램만큼 무겁기도, 수정만큼 가볍기도 하다.​ 

엄정화

지금껏 나온 신세하의 곡들엔 피처링이 적다. “좁은 시야에서 제 얘기에만 집중하느라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이번엔 본인의 음악에서 한 발짝 물러서 보기로 했다. “제가 곡을 쓰고 다른 사람이 노래했으면 좋겠단 생각에서 앨범을 시작했어요.” 어려서부터 팬이었던 가수 엄정화가 떠올랐다. “오랜 시간 꾸준히 다양한 모습으로 활동해온 걸 본받고 싶어서요.” 수록곡 ‘Na’와 ‘1000’에 엄정화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롱런’하고 싶은 신세하는 오래 뛰기 위해 함께한다. (CREDIT 사진/ 엄정화 @umaizing)


 

개성

음악만큼이나 그의 스타일에도 신세하만의 모습이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민의 흔적이 묻어나는 그의 모습은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패션에 조예가 깊다기보다 제가 좋아하는 걸 음악뿐 아니라 그 외적인 것에서도 잘 섞어서 보여주고 싶어서요.” 이를테면 그가 눈여겨 보는 80년대 힙합 스타일이 그중 하나다. 그의 음악이 어떤 장르라 손꼽아 말하기 어렵듯, 그의 스타일도 다양한 요소의 집합체다. ‘신세하'는 그렇게 자신을 형용하는 말이 됐다. 

 

과천

경기도 과천에선 서울 지역번호 02를 쓴다. 그만큼 서울과 가까운 곳에서 나고 자란 신세하는 과천을 조용한 소도시로 기억한다. 정부청사가 있던 시절, 판에 박힌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음악을 안식처로 삼았다. “제가 듣던 자극적이기도 한 음악과 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진 도시여서 오히려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혼자는 아니었다. 앨범 <1000>에서도 함께한 O3ohn은 초중고 동창이다. 학창 시절, 백지같이 ‘뉴트럴'한 공간에서 함께 음악을 만들었다. 그 모습을 재구성해 담은 영화의 제목 ‘12하고 24’는 시곗바늘이 한 바퀴 돈 지점, 12와 24이면서 제자리의 0이기도 하다. <1000>엔 0이 세 개 있다. (CREDIT 사진/ 김남석 @smackfrontonly) 

 

신세하의 작업실은 주변에 자리한 공장의 기계 소리와 좁은 골목을 오가는 오토바이 엔진 소리에 조용할 날이 없다. 밤이 되어 공장이 닫으면 서울의 중심이라 믿지 못할 만큼 고요해진다. 그 속에서 곡을 쓴다. “그래서인지 제 음악에서 차분하고 도시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나 봐요.” 지금까지 나온 대부분의 뮤직비디오엔 신세하가 도시의 밤을 거니는 모습이 담겨있다. 조용한 도시 속에서 그는 걷고, 춤추고 노래한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글리터나 네온사인은 고요한 수면 위에 일렁이는 그의 목소리 같다. <1000> 커버 사진도 어둠 속 빨간빛에 드러나는 그의 옆모습을 담았다. 신세하가 가장 빛나는 시간은 밤이다.  

샘플링

“힙합은 어렸을 때 많이 듣기도 했고 처음 ‘신세하'란 이름으로 나온 게 래퍼의 앨범이라 저와는 뗄 수 없는 장르예요.” 그의 음악이 힙합으로 분류되진 않지만 샘플링의 작법을 빌려왔다. 샘플링은 뿌리를 찾는 일이다. 단순히 어떤 악기의 라인을 차용하는 대신, 앨범에 담긴 가사나 이미지의 재료가 된 근원을 파악하는 것이다. “예전엔 소울, 훵크 등 대중적인 곡들을 많이 샘플링 했는데 이번 앨범에선 앰비언트, 재즈, 현대음악 등 더 넓은 스펙트럼에서 재료를 가져왔어요.” 넓은 취향이 힙합 속에서 응축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신세하는 퍼포먼서다. 라이브 뿐 아니라 뮤직비디오나 사진 속에서도 그는 신중한 제스처를 취한다. “음악을 자기의 몸으로 한 번 더 표현하는 거죠.” 춤은 음악을 대하는 자세다. “미리 계획하진 않더라도 제 음악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해요. 반 의도, 반 무의식?” 이전엔 의도가 조금 더 강했다면 이젠 보다 자연스러워졌다. “처음엔 저도 스스로를 잘 몰라서 범위를 만든 것 같아요.” 신세하의 움직임은 채워졌고 확장된다. 

구두

구두는 신세하의 발끝을 단단하게 잡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의 퍼포먼스도 구두'빨'을 받는다. “공연할 때 불편한 신발을 신는 게 좋아요. 오히려 경각심이 생기고 자기최면이 되더라고요.” 날렵한 모양에 밑창이 매끈한 구두가 좋아 평소에도 즐겨 신는다. “딱 잡아주는 게 있으니까 거기에 지지 않는 꼿꼿한 태도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의 퍼포먼스는 미끄러지기 직전 사로잡는다. 

CREDIT 글/ BUDXBEATS 편집팀 사진/ BUDXBEATS 편집팀, 뇌, 엄정화, 김남석 - Nov 0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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